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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고구려인은 황제의 후손?

    2022.10.13 by hallyang

  • 12. 초기 고구려는 고조선의 일부였다

    2022.10.12 by hallyang

  • 11. 고구려인과 한국인의 유사성 (2)

    2022.10.12 by hallyang

  • 10. 고구려인과 한국인의 유사성 (1)

    2022.10.12 by hallyang

  • 9. 신라의 민족융합 정책

    2022.10.12 by hallyang

  • 8. 고구려 유민의 거취

    2022.10.12 by hallyang

  • 7. 과거 한국인들의 고구려 인식

    2022.10.12 by hallyang

  • 6. 과거 중국인의 고구려 인식

    2022.10.12 by hallyang

13. 고구려인은 황제의 후손?

어떤 중국인들은 삼국사기의 내용을 근거로 고구려의 고씨는 중국 황제인 제곡 고신씨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역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우스운 궤변이다. 1.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기록인 '삼국사기'는 한국인 김부식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한국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적혀있다는건 무엇을 뜻하는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삼국사기는 자국의 정통성있는 역사를 쓰는 본기(本紀)형식으로 고구려를 기록했다. 이것은 오히려 고구려가 한국역사로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자료라는 것이다. 2.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는 중국 고대의 신화상의 황제이다. 말 그대로 신화속 인물일 뿐이다. 만약 고구려 사람이 스스로를 ..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3. 01:12

12. 초기 고구려는 고조선의 일부였다

일부 중국인들은 고구려가 한사군에서 파생된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원래 고조선의 (구려라는 이름의)후국이었습니다. 1. 고구려는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하기 전 고조선 시기부터 존재했다. 중국의 전한시기(기원전 206년~ 기원후 24년)에는 고구려를 '구려'라고 불렀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후국'(속국)으로 존재했는데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에는 "구려가 본래 조선(고조선)땅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에서 호구수는 전현도군 때의 것이고, 領縣 셋은 B.C. 75년 이후 현도군이 퇴출된 뒤 압록강 중류 유역 방면에 있던 것을 요동쪽으로 옮겨 재위치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곧 B.C. 107년 현도군이 설치될 당시에 고구려(高句驪)라는 명칭이 이미 실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 한사군..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15:23

11. 고구려인과 한국인의 유사성 (2)

일부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부여족이 세운 나라라는 것을 근거로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여는 한국역사이며, 많은 부여인들이 한반도로 남하했다. 1. 부여인 신라인들은 둘 다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이런 기록은 조선인과 신라인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한국인은 오직 신라의 후손이라는 주장하는 일부 중국인을 반박한다. 2. 최근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에서 가야의 유물들이 도굴당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그런데 이 유물 중에는 중국의 라마동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매우 유사한 금속 유물이 많이 있었다. 중국 라마동 고분군은 선비족의 땅에서 발견되어 선비족의 유물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라마동 고분은 선비족이 아닌 부여인의 것이라는 주장..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13:03

10. 고구려인과 한국인의 유사성 (1)

일부 중국인들은 삼한족이라는 개념으로 백제와 신라를 한반도의 토착 원주민으로 국한시키고 그들을 고구려와 분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무지한 주장이다. 1. 신라인들은 본디 북쪽의 고조선 사람이었다. 초창기 신라는 '사로국'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국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로국'은 6개의 작은 촌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고조선에서 내려온 조선의 유민들이었다. 북방의 고조선인은 어떻게 신라를 세울수 있었을까?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인용된 『위략(魏略)』에 따르면 “처음 우거(右渠)가 아직 격파되기 이전에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간하였지만, 우거가 듣지 않았다. 이에 역계경은 동쪽 진국(辰國)으로 갔다. 이때 민(民)으로 따라가 옮긴 자가 2000여 호(戶)였다”고 하였다. ..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11:31

9. 신라의 민족융합 정책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삼한일통을 실현하기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1. 7세기 통일신라시기 쓰여진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민합삼한이광지'(民合三韓而廣地·삼한의 백성이 하나로 합쳐지고 땅은 넓어지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모두 아우르는 '삼한일통'의식을 가진 것 이었다. 2. 중앙군인 구서당(九誓幢)을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로 편성했다. 9개의 부대 중 3개는 신라인으로, 3개는 고구려인으로, 2개는 백제인으로, 1개는 말갈인으로 구성했다.지방군이 아닌 중앙군을 고구려, 백제인으로 구성한 것은 신라가 삼국을 삼한일통의식을 가지고 통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출신 관료들을 인정하여 신라 관직체계에 맞도록 관직을 주었다. 고구려와 ..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10:13

8. 고구려 유민의 거취

고구려가 멸망하고 그 유민들은 모두 당나라로 끌려갔다는 것을 증거로 고구려를 중국역사라고 생각하는 일부 중국인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1.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로 간 고구려인도 많았다. 특히 신라가 차지한 황해도 재령의 한성(漢城)은 고구려 때 평양성ㆍ국내성(國內城)과 더불어 3경(京)의 하나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게다가 고구려 보장왕의 서자로 알려진 안승은 이후 신라 왕의 여동생과 혼인했다. 2.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인들과 함께 당나라에 맞서 싸웠다. 이외에도 고구려 유민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신라로 망명하는 경우가 틈틈이 있던것으로 보인다. 3. 당나라나 신라로 가지않고 요동에 남은 고구려인들은 발해를 세운다. 발해와 일본의 외교기록이나 당나라에 간 고구려인들이 묘지에 스스로를 발해..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09:55

7. 과거 한국인들의 고구려 인식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수백년 전에도 고구려를 한국역사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1. 본기(本紀)는 역사서를 편찬하는 형식의 하나다. 중국의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본계와 관련되었으므로 본(本)이라고 하였으며, 여러 가지 일을 통할하여 해결한 것을 연월일 순서에 따라 정리하였으므로 기(紀)라고 한다.”고 하였다. 고구려를 본기(本紀)형식으로 기록한 역사서는 '삼국사기' 등의 한국기록 밖에 없다. 2. 고려인들도 고구려를 당연히 한국의 역사로 보았다. "而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尙有存焉. 夫勾高麗失之於前 今上得之於後, 豈非天歟?" 이 땅은 본디 구고려(勾高麗)가 소유하고 있었다. 옛 비석의 글귀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하여 구고려가 전에 잃은 것을 금상[31]이 후에 얻으니, 어..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02:42

6. 과거 중국인의 고구려 인식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수백년 전에도 고구려를 한국역사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1. '본기(本紀)'는 역사서를 편찬하는 형식의 하나다. 중국의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본계와 관련되었으므로 본(本)이라고 하였으며, 여러 가지 일을 통할하여 해결한 것을 연월일 순서에 따라 정리하였으므로 기(紀)라고 한다.”고 하였다. 즉 본기(本紀)는 자국의 정통성있는 역사를 쓰는 역사서의 한 형식이다. 고구려를 본기(本紀)형식으로 기록한 역사서는 '삼국사기' 등의 한국기록 밖에 없다. 중국 역사서중 고구려를 본기(本紀)로 다룬 것은 없다. 모든 중국 역사서는 고구려를 외국열전(外國列傳)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즉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서 기록한게 아니다. 중국 역사서중 고구려를 본기(本紀)형식으로 다룬 ..

카테고리 없음 2022. 10. 1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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