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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구려 유민의 거취

hallyang 2022. 10. 12. 09:55


고구려가 멸망하고 그 유민들은 모두 당나라로
끌려갔다는 것을 증거로 고구려를 중국역사라고 생각하는 일부 중국인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삼국사기



1.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로 간 고구려인도 많았다.

연정토(淵淨土)가 거느리고 간 12개 성읍 763호, 3543인
왕자인 안승(安勝)이 이끌고 간 4천여 호
검모잠이 주도한 고구려 부흥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문무왕이 포로로 잡아온 7천명
문무왕 8년(668)에 귀부한 대곡(大谷), 한성(漢城) 등 2개 군과 12성의 민들,
나당(羅唐)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신라로 편입된 패서(浿西) 지역 사람들

특히 신라가 차지한 황해도 재령의 한성(漢城)은 고구려 때 평양성ㆍ국내성(國內城)과 더불어 3경(京)의 하나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황해도 재령의 한성(漢城)은 검모잠이 이끈 부흥군의 중심지였다

게다가 고구려 보장왕의 서자로 알려진 안승은 이후 신라 왕의 여동생과 혼인했다.


2.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인들과 함께 당나라에 맞서 싸웠다.

요동의 오골성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끌던 고연무는 신라와 함께 당나라에 맞섰다
신라와 함께 당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들은 모두 신라로 망명한다

이외에도 고구려 유민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신라로 망명하는 경우가 틈틈이 있던것으로 보인다.

기록에서 보이는 안동성은 요동의 신성(과거 고구려의성. 현재의 랴오닝성 푸순지역)으로 보인다.


3. 당나라나 신라로 가지않고 요동에 남은 고구려인들은 발해를 세운다.
발해와 일본의 외교기록이나 당나라에 간 고구려인들이 묘지에 스스로를 발해인으로 기록한 것에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과 발해의 외교 문서들
당나라로 간 고구려인과 그 후손의 묘비 내용

훗날 발해가 거란에 의해 무너지자,
많은 발해의 세자 대광현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 수만호가 형제국인 한반도의 고려로 망명한다.
고려 왕은 이들에게 관직과 토지를 하사한다.

발해인의 망명 기록은 고려사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망명 기록
망명한 발해인들이 수만호 즉 수십만명이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


4. 기록상 고구려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은 20만명 정도로 매우 많았던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당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고구려의 인구는 69만 7천호(1호당 5명으로 계산하면 약 350만명)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의 기록도 일치한다.
따라서 고구려 유민의 대다수가 당나라로 갔다는 것은 맞지 않다.


고구려인을 강제로 끌고간다고 해서 고구려인이 중국인이 되지는 않죠. 당나라에 간 고구려 유민 대다수가 강제로 사민되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