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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초기 고구려는 고조선의 일부였다

hallyang 2022. 10. 12. 15:23


일부 중국인들은 고구려가 한사군에서 파생된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원래 고조선의 (구려라는 이름의)후국이었습니다.

1. 고구려는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하기 전
고조선 시기부터 존재했다.
중국의 전한시기(기원전 206년~ 기원후 24년)에는 고구려를 '구려'라고 불렀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후국'(속국)으로 존재했는데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에는 "구려가 본래 조선(고조선)땅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후한서 동이열전

여기에서 호구수는 전현도군 때의 것이고, 領縣 셋은 B.C. 75년 이후 현도군이 퇴출된 뒤 압록강 중류 유역 방면에 있던 것을 요동쪽으로 옮겨 재위치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곧 B.C. 107년 현도군이 설치될 당시에 고구려(高句驪)라는 명칭이 이미 실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 한사군은 매우 짧은 시기동안 존속했고 한국 토착민에 의해 축출된다.
전한은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의 3군을 위만조선 영내에 설치하였으며, 기원전 107년에 다시 예맥(濊貊) 지방에 현도군을 설치하였으나,

토착민의 저항으로 인해 기원전 82년에 이르러 진번·임둔 양군을 폐지하여 진번군을 낙랑군에 임둔군을 현도군에 각각 병합시켰으며, 기원전 75년(전한 소제 원봉 6년)에는 토착민의 반발로 현도군이 요동 방면(지금의 혼하(渾河) 상류의 흥경(興京) 노성(老城) 지방)으로 옮겨졌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이후 313년 미천왕은 낙랑을 공격하여 2천의 남녀를 포로로 잡았으며 낙랑·대방의 군벌 장통(張統)이 모용씨에게 투항한 뒤, 314년에 대방군까지 축출되면서 한사군은 소멸되었다.
고구려 뿐만아니라 백제도 한나라 세력을 축출하는데
동참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사기 백제본기
삼국사기 백제본기

결론적으로 토착민의 저항에 의해 한사군 중에 임둔군과 진번군은 겨우 20년 정도 존속되었고 현도군은 설치된지 30년 뒤에 요동 북부로 쫒겨났다. 낙랑군은 겨우 버티다가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하여 2천의 남녀를 포로로 잡고 한나라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고구려는 한나라 세력을 공격하고 축출하는데 진심인 나라였어요.  고구려가 한사군에서 파생되었다는 궤변은 무시하세요.^^